
| [편집자주] <소리의숲>의 '적녹영화'는 노동 또는 환경을 주제로 한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노동을 '적'(빨간색), 환경을 '녹'(녹색)에 비유해 코너 이름을 땄습니다. 이 코너에는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의 기고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
2차 세계대전 후 동물학자들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독일과 소련의 전쟁터였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에 서식하던 늑대가 사라지고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새 늑대 무리가 포착됐다. 조사 결과 소련에서 사라진 개체군과 같았다. 늑대가 집단 이주한 것이다.
해답은 금방 도출됐다. 벨라루스 인구 3할이 희생되는 학살극이 진행되는 가운데 늑대조차 견디다 못해 ‘엑소더스’한 것이다. 인간들의 전쟁이지만 피해는 인간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지역 생태계 모두가 파괴와 죽음에 직면한다. 벨라루스 늑대의 대탈주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오랫동안 대평원에서 보호받던 많은 희귀종이 전쟁으로 대가 끊어지거나 멸종위기에 몰렸다.
한 세기가 지나 거의 같은 지역에서 또 다른 참상이 시작됐다. 러시아 침략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발발과 동시에 1,200만 명의 우크라이나 시민이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 민간인 주거를 향한 무차별 공습과 포격으로 도시와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그 와중에 비인간-동물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사람도 죽어 나가는데 반려동물을 챙길 순 없다고 흔히 치부한다. 전시 상황에 반려동물을 피신 어려움과 화재 유발 등 이유로 살처분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피난길에 남기거나, 풀어주고 살길 찾으라는 걸 뭐라 할 수도 없다. 동물권 호소가 배부른 소리로 매도되는 건 흔하다. 하지만 그런 냉정한 실용주의도 한 번쯤 의심해 볼 순 없을까?

반려견 찾아 삼만리에 나선 감독이 목격한 전쟁
<니카를 찾아서>는 영화감독인 주인공이 피난 도중 잃어버린 반려견 ‘니카’를 찾고자 수소문하며 문을 연다. 일단 여기저기 광고를 걸지만, 니카 소식은 통 없다. 감독은 동물 구조 활동가들과 함께 고향 인근 수색에 동참하지만 곧 자신만 그런 상황이 아님을 깨닫는다.
처음엔 고향 주변 동물 보호소를 찾았다. 여전히 포화 속에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는 그곳에는 3,500마리 주인 잃은 개들이 굶주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다음엔 위험을 감수하며 전장 주변에서 대피하지 못한 반려동물을 수색하는 활동가와 동행한다. 겁에 질린 채 구석에 숨은 동물, 구조가 늦어 죽고 만 동물이 가득했다. 타조농장은 러시아 군인들이 마치 사파리 사냥하듯 심심풀이로 쏴죽인 시체로 가득했다. 지인의 마구간엔 애지중지 돌보던 말들이 곳곳에 죽어 있고,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보던 사육사도 생사가 불투명했다. 전선 곳곳 죽음이 가득했다.
어느새 감독은 포탄과 지뢰밭을 뚫고 동물을 구조하는 이들 곁에 카메라를 들고 합류해 있다. 폭격에 노출된 동물원에서 구조를 벌이다 파편에 맞아 감독도 부상을 겪는다. 애타게 구출을 기다리는 동물들 바로 옆에서 포탄을 피해 종일 숨어 있어야 하는 활동가들은 분해서 눈물을 흘린다. 가족처럼 돌보던 동물의 처참한 유해를 수거하다 그들과 즐거웠던 추억을 보여주는 이들의 비애는 화면을 넘어 보는 이에게 전해진다. 간신히 구조된 동물들도 겁에 질린 채 인간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당연한 결과다.

부흥의 용기로 각색한 실용성의 명암
영화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이들이라면 차마 보기 힘들다. 하지만 감독은 비인간-동물에 인간 본위 감정을 주입해 신파를 증폭하는 데 집착하진 않되, 무도한 침략자에 맞서 저항을 이어가는 시민들의 의지와 구조 활동가들의 영웅적 활약을 자연스레 이어 붙인다. 천신만고 끝에 구출한 동물들의 새 삶을 조명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다. 안 그러면 너무 힘들 뻔했다.
환희의 순간도 포착된다. 외양간에 갇혀 삐쩍 말라 죽을 위기의 사자를 발견하고, 마취도 완료하지 못한 표범을 구조하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침략전쟁 가운데 ‘동물권’을 소리 높여 주장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들 역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 했지, 나 몰라라며 반려동물만 구할 순 없는 노릇. 구조 과정에서 희생자도 속출한다. 인간과 비인간-동물 모두 전쟁의 피해자다.
아쉬운 점도 발견된다. 물론 전쟁을 겪은 당사자가 관찰하듯 중립적일 순 없는 노릇이다. 러시아 군대가 왜 동물 보호구역을 공격하는지 이유를 굳이 확인하기보다는 사악한 침략자의 본성 탓으로 단정하고 만다. 여기에 촬영 여건상 ‘재연 상황극’ 방식이 상당 부분 엿보인다. <니카를 찾아서>는 감독의 특정 의도에 맞춰 편집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작품의 본질적 한계일 순 없다.

동물권을 위해 모든 전쟁에 저항하라
3일이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난다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시민은 굳세게 항거해 4년째 전쟁은 계속됐다. 국토 수복과 평화 열망은 배후 강대국의 셈법에 배반당한 현실이다. 동물권을 수호하려면 인권과 정의가 보장되어야 하고, 불의한 전쟁은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 해악을 미친다. ‘말하지 못하는 짐승’이 측은하다면, 기꺼이 전쟁 반대와 평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실이 사무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시리아 내전 당시 폐허가 된 도시 알레포에서 주인 잃은 고양이들을 돌본 ‘고양이 아저씨’ 알라 알자렐 일화가 떠오른다. 국내에도 그림책 「행복한 고양이 아저씨」 (비룡소, 2021)로 출간된 사연이다. 온갖 명분 내세우지만, 실상은 추악한 기득권 전쟁에 관한 근본 해법은 정의와 연민이라는 보편적 공감일 수밖에 없다. 동물권과 인권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직 전쟁과 탐욕에 맞서야 할 뿐.
<작품정보>
니카를 찾아서
Searching for Nika
2023|스페인, 우크라이나, 미국|다큐멘터리|76분
감독 스타니슬라브 카프랄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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